
출근이 없으면 하루의 시작이 흐려진다. 눈을 뜨자마자 메신저를 확인하고, 잠옷 그대로 노트북을 열고, 정신을 차려 보면 점심이다. 재택근무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이 아침이고, 아침이 무너지면 그날 전체가 늘어진다. 출근을 대신할 삼십 분짜리 의식이 필요하다.
옷을 갈아입는다
정장까지는 아니어도 잠옷과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것만으로 몸이 일할 준비를 한다. 화상회의가 없는 날에도 그렇다. 반대로 일이 끝나면 다시 편한 옷으로 갈아입어 하루를 닫는다.
밖에 한 번 나갔다 온다
출근길을 흉내 내는 것이다. 집 앞을 십 분만 걷고 들어와도 뇌는 이동했다고 인식한다. 커피를 사 오거나 쓰레기를 버리는 정도의 목적이면 충분하다. 비 오는 날은 베란다에서 바깥 공기를 오 분 쐬는 것으로 대신한다.
오늘 할 일 세 개를 종이에 적는다
메신저와 메일을 열기 전에 한다. 열고 나면 남의 요청이 내 계획을 밀어낸다. 세 개만 적는 이유는 재택에서 하루에 제대로 끝낼 수 있는 일이 그 정도이기 때문이다. 다 하면 더 적으면 된다.
책상을 정리하고 물을 한 잔 놓는다
어제 남긴 컵과 메모를 치우고 물을 새로 채운다. 이 동작이 자리에 앉는 신호가 된다. 앞선 글에서 정한 자리와 모니터 높이가 여기서 빛을 발한다.
루틴이 깨지는 날
늦게 일어난 날, 아침 회의가 있는 날은 삼십 분이 없다. 그런 날은 옷 갈아입기와 할 일 세 개 적기, 두 가지만 한다. 오 분이면 된다. 루틴은 완벽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최소 버전을 정해 두고 그것만은 지키는 것이다.
한 달쯤 지나면 어느 단계가 나에게 효과가 있는지 보인다. 효과 없는 단계는 빼고 남은 것만 유지한다. 루틴은 남의 것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 것으로 줄여 가는 과정이다.
이 루틴은 출근하는 날에도 쓸 수 있다. 사무실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지는 않지만, 자리에 앉기 전에 할 일 세 개를 적고 책상을 정리하는 것은 같다. 재택과 출근을 오가는 사람일수록 두 환경에서 같은 시작 의식을 갖는 것이 도움이 된다.
아침 루틴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메신저를 나중에 여는 것이다. 밤사이 온 메시지가 궁금하고, 안 보면 불안하다. 그런데 한 주만 참아 보면 아침 삼십 분 안에 급한 일이 온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말 급한 일은 전화로 온다. 메신저는 루틴이 끝난 뒤 열어도 늦지 않고, 그때 열면 오히려 차분하게 답할 수 있다.
루틴은 남에게 보여 줄 필요가 없다. 옷을 갈아입었는지, 밖에 나갔다 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더 쉽게 무너지고, 그래서 더 의식적으로 지켜야 한다. 나만 아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 재택근무의 자기 관리다.
삼십 분이 아까워 보여도 이 시간이 없으면 오전 두 시간이 흐지부지된다. 한 주만 해 보면 차이를 안다.